황윤희 기자

진정으로 소망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뤄지도록 돕는다고 했다.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하면 하늘도 움직인다. 그게 사람의 힘이다. 여기 그 좋은 예가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로 경기도의원에 당선된 김보라 의원(46세). 선거 한 달 전만 해도 그녀가 도의원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본인도 몰랐다. 심지어 그녀는 공천받기 바로 전날 입당했을 정도다. 하지만 우주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20여 년 전 그녀가 안성 고삼면으로 농활을 올 때 아무도 모르게 떨어진 밀알이 지금 경기도의회 의원이라는 열매로 돌아왔을 뿐이다.
 
김보라 의원은 1989년부터 대학 4년 내내 의료봉사를 오며 안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안성의료생협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그곳에 일할 사람이 필요해 아예 내려왔다. 그게 93년 10월이었다. 인연인지 그즈음 김 의원의 남편 될 사람도 안성으로 내려온다. 신랑은 88년에 농촌활동을 왔다가 94년 조현선 조합장과의 인연으로 고삼농협에 취업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이 안성과 연을 맺은 시기가 비슷했다. 같은 공간에서 얼쩡거리다보니 만났고 사랑이 싹 텄고 그렇게 96년 결혼, 안성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김 의원과 남편은 안성에서 처음 만났지만 지금도 시어머니는 아들이 그 촌에서 취업할 일이 없었다고, 아마도 며느리 쫓아 내려왔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당시 이 나라에선 의료생협, 협동조합이란 말이 생경한 이국의 단어일 때였다. 맨 땅에 헤딩하듯 최초의 시도들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김보라 의원은 많은 역할을 했다. 정말 발바닥이 닳도록 지역을 누비고 다니며 조합원을 모으고 온갖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간사로 시작해 사무장, 사무국장을 거쳐 4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무이사까지 한다. 지난 4월 24일, 의료생협이 20주년을 맞았다. 그것은 김 의원이 생협에서 일한 지 20년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그녀는 한 우물에 청춘을 바쳤다.
 
그런데 생협은 원래 10년 일하면 3개월 쉬게 해준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김 의원은 이번 기회에 석 달을 쉴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네가 과연 쉴 수 있을까,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워낙에 바지런하고 일중독이라 부를 만큼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정말 놀랍게도 5월부터 쉬려는데 딱 그때에 비례대표 출마 제안이 들어온다. 김 의원은 일주일도 쉬지 못했다.
 
도대체 당원도 아니었던 그녀는 어떻게 야당 비례대표 3번이 되었나? 이변이었다. 경기도당 실무자가 한 번 얼굴도 못 본 사람이 추천서만으로 공천 받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어디의 누가 그녀를 추천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김 의원이 의료생협 활동을 하며 그동안 무수히 만났던 사람들이 그 추천과 검증과정에 한몫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사회적기업 관련 단체와 여성단체 등에서 자발적으로 김 의원을 추천하겠다고 제안했고, 제안을 받은 당은 두루두루 김 의원의 자질에 대해 물어보았다. 세상은 그녀가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사람’으로, 공천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대답을 돌려보냈다.
 

사실 20년 생협 일을 하면서 그녀는 정치권에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리 정부 공무원을 만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그들의 이해도는 떨어졌다. 정부는 그저 규제하고 관리하려고만 들었던 것이다. 결국 제도를 바꾸기 위한 정치력의 필요를 느꼈고, 평소의 그런 생각이 이번 공천과 당선으로 연결되었다. 또 사회적경제나 협동조합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요청이, 그 분야의 전문가인 그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러니 도의원 당선은 20년 바지런히 돌아다닌 그 모든 발걸음이 쌓인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또 김 의원은 사회적경제, 의료생협 등에 관해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정말 ‘빡세게’ 일하며 안성의료생협 20년 역사를 만들어왔고, 2년 동안은 전국에서 쇄도하는 강의와 컨설팅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의료로 받아 의료생협에 돌린 돈만 해도 1년에 1천만원에 달한다니 어지간한 교수 못잖다. 심지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강의와 회의를 갈 때도 많았다. 접촉사고를 낸 뒤에도 뒤처리 남에게 맡기고 바로 강의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러니 도의원된 것이 이변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성실한 사람은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김보라 의원은 아마도 수만 시간쯤 투자했으리라.
 
어쨌든 그녀는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김 의원을 아는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감이다. 그것이 김 의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전에 의료생협 일을 할 때는 도와주겠다, 고생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정치인에 대한 선입견 등으로 모르는 분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원래 사람을 길게, 오래 만나는 걸 선호하는데 도의원이라는 자리의 구조가 그렇지도 못하고요.” 김 의원은 하루에 쫓아다녀야 하는 행사가 8개씩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런 공간에서 주민을 만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 따라다니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공부할 것도 무지하게 많다. “이전에는 제가 잘하는 분야만 공부하면 되는데, 이제는 최소 상임위 관련 분야는 다 알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또 주민 분들의 온갖 민원도 들어야 하고 조례도 제정해야 하니 전체, 전 분야에 관심을 둬야 하는 거죠. 설마 의료생협 때보다 더 빨빨거리고 다니겠냐, 이전보다 더 힘들겠냐 싶었는데 오판이었습니다.” 들어보니 그렇다. 의원 역할 제대로 하려면 몸이 딱 열 개쯤 있으면 적당할 듯싶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는, 게다가 신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 의원이 이전에 의정비 인상에 반대했던 일화를 전하며 웃는다. 그 돈이 많은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물론 ‘제대로 일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녀에겐 부담이 될 테지만 김 의원에게 거는 시민들의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재력이나 권력욕으로 만들어진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힘으로 탄생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정말 새 정치를 할 것이라는, 또 새 정치의 초석을 놓으리라는, 것도 아니면 최소한 새 정치의 청사진쯤은 보여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저 개인이 도의원이 된 게 아니라, 의료생협이나 사회적경제 만들어갔던 분들이 인정을 받은 것이라 생각해요. 그 분들의 역할이 확장된 것이고 저는 그 전체를 대리하고 있는 것뿐이죠. 어느 단체나 부문을 대표해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 이후에 현장과 단절되고 변해가는 성향이 있다더군요. 저는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개인이 도의원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 듣기에 참 좋다. 이 여성 가까이서 보니 단단히 여문 사람이다. 추진력에, 세심함에, 정의로움에, 다방면으로 능력을 갖춘 미인이다.
 

김 의원은 상임위로 사회적경제를 포함하는 경제과학기술위원회를 선택했다. 그녀의 전문분야다. 당에서 다른 위원회를 추천할 때는 그럴 거면 안한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제대로 된 역할, 민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를 맡겠다는 의지였다. 앞으로 이 여자 홍길동의 역할이 기대된다.
 
김 의원은 그 바쁜 와중에도 결혼하고 자식 키우고 다 했다. 김 의원이 그럴 수 있었던 데는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김 의원의 집에는 누나 밥 챙겨주고 빨래 돌리고 널고 식구들 귀가 시간 맞춰 문 열어주는 중2 아들이 있고, 엄마 정말 힘든 일 하는구나, 그런 위로를 전해주는 고2 딸이 있다. 또 불평 없이 자발적으로 가사 일에 나서고 엄마의 빈자리를 찾는 아이들에게는 가교역할을 해주며 외조 잘하는 남편이 있다. 가족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훤히 보인다. 살뜰히 서로를 돕고 위하는 가족이 있으니, 그녀의 의정생활도 살뜰히 시민을 위하고 시민에 힘이 되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김 의원의 중2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내가 이제 주부가 된 것 같아.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는 참 좋은 것 같아. 공부하라, 학원가라 소리 안하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야.”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부자 되라, 성공해라 소리 거두고 모두가 살고 싶은 세상, 하루하루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김보라 의원이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그 길에 안성시민들의 도움과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황윤희 기자 9486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