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DMZ 동부지역에서 무인생태조사 장비에 촬영된 새끼 반달가슴곰의 모습. | 환경부 제공
비무장지대(DMZ)에서 개울을 건너는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전에도 DMZ에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으리라는 추정은 있었지만, 실제 모습이 생생하게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은 DMZ 동부지역 일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반달가슴곰의 서식을 최근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2014년부터 설치한 92대의 무인생태조사 장비 중 하나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찍혔다. 이 장비는 센서가 장착된 사진기로, 동물(온혈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면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지난해 10월에 찍혔다. 사진 속 반달가슴곰은 크기를 볼 때 태어난 지 8~9개월 정도 된 어린 새끼로 보인다. 몸무게는 약 25~35㎏ 정도로 추정됐으며, 계곡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어미곰은 한 번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형제 곰이 있을 수도 있는 셈이다. 국립생태원은 부모까지 포함하면 최소 3마리 이상의 반달가슴곰이 이 일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DMZ 일대에선 반달가슴곰을 봤다는 군인들의 목격담이 있었다. 2016년에도 곰의 형체로 보이는 영상이 촬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라와 불과 5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반달가슴곰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DMZ에서 촬영된 반달가슴곰의 희미한 모습. | 환경부 제공
국립생태원에선 이번에 발견된 곰이 멀리 지리산에서 건너갔거나 인근 농가의 사육곰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DMZ을 둘러싼 철책과 군의 감시체계를 고려할 때 대형포유류가 드나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DMZ 일대에 야생 반달가슴곰 일부가 살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야생 곰으로 추정됐다. 특히 새끼곰이 있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번식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반달가슴곰은 일제강점기 해수구제사업과 해방 이후 밀렵,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급감해 199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됐으며, 2004년부터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1년 5마리 수준이었던 야생 반달가슴곰은 현재 61마리로 늘어나 지리산과 수도산 일대에 살고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인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동부전선은 백두대간과 DMZ가 만나는 지점”이라면서 “군 철책을 넘기는 어려워 DMZ 내부에서 횡으로 이동하며 지낼 것으로 추정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한 북한 쪽으로 오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DMZ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발견되면서 남한에서 가장 안정적인 생물 서식지라는 점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면서 “고성부터 파주까지 DMZ 내부 전 구간은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로 보고 교각이나 도로 등 생태축 절단 공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3대 생태축인 DMZ은 ‘호랑이 빼고는 다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환경부 조사에서 총 6168종의 야생생물이 DMZ에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멸종위기종 267종 중 102종(38%)이 DMZ이라는 좁은 띠 안에 몰려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에 따라 설정된 DMZ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약 2㎞의 범위이며, 면적은 서울의 1.5배 정도인 907㎢로 알려졌다.
인간은 들어설 수 없어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된 DMZ에는 반달가슴곰 외에도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두루미·재두루미, 산양, 사향노루가 살고 있다. DMZ가 없었다면, 진작에 한국에서 절멸됐을 동물들이다.
유승광 환경부 자연생태정책과장은 “무인 장비에 의존한 극히 제한적인 조사에서 반달가슴곰 서식이 확인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생태적 가치가 높은 DMZ 일대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인생태조사 장비에 촬영된 DMZ 동물들의 모습
멸종위기 2급 담비. | 환경부 제공
멸종위기 2급 담비가 나무를 오르는 모습. | 환경부 제공
멸종위기 1급 산양 가족의 모습 | 환경부 제공
멸종위기 1급 산양의 모습 | 환경부 제공
멸종위기 2급 삵의 모습 | 환경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