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옥시 본사대표가 언론 기자들을 모아놓은 대국민 사과의 자리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와서 항의하며 기자들 앞에서 하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일부만 옮기면 이렇다.
▲ 이성빈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내 아이가 돌도 안돼서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8개월 만에 사투를 벌이다 죽었다. 근데 5년 만에 사과를 한다고 한다. 정말로 미안하다면 언론을 이용해서 검찰수사면피용 형식적 사과가 아닌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서 너희가 네 자식을 죽인 것이 아니다. 죄송하다. 네 자식 죽인 놈은 우리다. 옥시다라고 사과해야 한다”
기업은 나 몰라라, 정부도 손 놓고 있던 5년 동안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이면서도 그들의 무관심과 무책임과 방관으로 어느새 ‘가해자’의 죄책감으로 살아 온 것이다.
먼저 정부의 책임을 살펴보자.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살균제참사 백서>에 의하면 원인물질은 ‘PHMG 인산염’이라는 화학물질이다. 근데 유공이 1996년 12월 30일에 이 유독물질 제조를 위해 환경부에 ‘화학물질제조신고서’를 제출하였는데, 환경부는 이후 법령에 따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고시했다고 한다. 작금의 참사를 원천봉쇄할 첫 기회였는데, 허술한 법령과 어떠한 안전성 평가도 받지 않은 정부의 안이한 화학물질 관리가 큰 재앙의 씨를 뿌린 것이다.
이러한 안전관리 구멍의 배경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경제성장 만능주의에 빠져 국민안전보단 기업의 이윤을 우선했던 정부정책이 자리한다. 이는 이후 몇 차례나 예방 가능했던 수차례의 기회들을 다 놓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1997년부터 가습기살균제가 출시되어 해마다 60만개씩 팔리고, 5년 후인 2002년 옥시제품을 사용한 유아가 사망하는 첫 사례가 보고되고 꾸준히 급성 폐손상이 보고됨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급기야 2011년 임산부 4명이 원임미상의 폐질환으로 연이어 사망하자 보건복지부는 그때서야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첫 사망이후 9년만이고, 출시된 지 14년만이다. 근게 가습기살균제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고도 보건복지부와 환경부는 소비자를 외면하고, 피해자를 외면해왔다. 그리고 기업의 구체적 사과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 나오게 된다. ‘무책임한 정부와 기업의 합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기업을 보자. 지금 국가적 화제로 떠오른 이후 나오는 기사를 보면 서울대 교수를 회유하여 연구결과를 조작하고, 김앤장이라는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를 통해 책임회피에만 급급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형사소송법상의 문구를 악용할 목적으로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주식회사를 해산하고 같은 날 유한회사로 전환까지 하였다. 부실한 법률과 정부의 부신한 관리의 허점을 파고들어 악용한 부도덕한 기업이 지금도 버젓이 영업을 이어 갈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근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습기살균제는 옥시뿐 아니라 애경 등의 다양한 기업에서 출시하였으며, 가습기살균제 뿐만 아니라 생활 속 다양한 화학물질이 이러한 허술한 안전관리의 허점을 이용해 아직도 방송을 통해 당당히 광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230여명, 노출자가 전문가에 따라 200만명에서 최대 800만명까지 얘기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만약에 당시 노출된 뱃속의 태아나 영유아가 성인이 되었을 때 증상이 발현되는 질병이 잠복하고 있다면, 당시 노출된 임산부가 폐경이 되었을 때 증상이 발현되는 질병이 잠복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진행형 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부는 서둘러 당시 노출된 국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벌여야 하며, 유해화학물질관리에 있어 소비자중심의 안전관리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이윤보장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우선하는 관련 법률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제2의, 제3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재발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지금의 상황은 가능성이 너무도 많다고 얘기하고 싶다. 정부와 기업이 바뀌지 않는 한. 시민들이 정부와 기업을 지금처럼 감시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성빈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 조합 서안성조합사업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