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범 기자 손원제 기자 이정애 기자

유럽 3개국을 순방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유럽의 유력 뉴스전문채널인 <유로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과거 정부가)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을 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이뤄진 대북 지원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됐다는 보수층 일각의 ‘퍼주기’ 의혹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3월30일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북한을 많이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밝힌 것보다도 강도가 세졌다. 이 때문에 대통령에게 맡겨진 남북관계 최종 관리자로서의 책무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지 않는 사실상의 ‘남북관계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사실 가장 폐쇄된 사회의 지도자”라고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모든 나라가 개방화와 국제공조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데 북한은 완벽하게 폐쇄된, 우리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유엔 제재와 같은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하도록 하고 있다”며,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그는 “중국, 러시아가 굳건하게 보조를 맞추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뒤,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발언은 기존에 유지해온 대북정책 기조와 변함이 없다”며 “다만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점에 비춰 볼 때,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대북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파장 축소에 나섰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등 북쪽으로 돈이 가는 남북협력 사업은 진전시키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속내를 대통령이 직접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높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보수적 선동을 목적으로 한 ‘퍼주기’론을 대통령이 공식화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온 대북 발언 중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고 상업 베이스로 거래된 것들이 핵 개발 비용에 사용됐다면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북한이 했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의원은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현금을 준 사실이 없고, 모래나 광물, 노동력 등 무역결제가 대부분이었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은) 무역도 하지 말라는 식의 남북 교류협력 폐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언젠가 대화 상대가 될 수도 있는 북한 최고 지도자를 자극할 수 있는 언급을 직접 한 것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보 분야 전직 고위 당국자는 “이미 이 정부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남북관계 무시 기조를 대통령이 말로 확인한 데 불과하다”면서도 “참모들과 조율도 안 된 듯한 메시지가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상황이 갑갑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바르샤바/황준범, 손원제 이정애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