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민주당과 시민사회의 격한 반발 속에 강행 처리한 언론 관련 법이 '날치기', '무효'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는 23일에도 결의대회를 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악법 폐지 투쟁은 계속…불법투표 한나라당 심판하자"

이날 대회에서는 언론노조 위원장과 지부장들이 무대 위에 올라 한나라당을 향한 날선 발언을 이어갔다. 포문을 연 것은 최상재 위원장이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언론이 장악되면 이처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칠 듯 싶다"며 전날 통과된 언론 관련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을 몇 가지만 말하겠다"며 언론 관련법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싸움을 해나갈 것임을 언급했다.

"우선 불법 재투표, 대리투표를 저질러 민주주의를 파괴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심판하자. 그리고 언론 독립과 자유 열망을 권력 투쟁으로 활용한 박근혜와 친박연대를 심판하자. 또한 날치기 투표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들 퇴출운동을 벌이고 이번 언론 관련법 직권상정을 배후 조정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절독운동을 벌이자. 또한 이들에게 광고를 몰아주는 기업 불매운동을 벌이자. 우리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 23일 언론노조 노조원들이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전날 통과된 언론 관련법의 폐지를 촉구했다. ⓒ프레시안

"사기극을 벌인 친박연대 박멸 계획에 나서겠다"

이근행 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장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목해 "하마터면 깜박 속을 뻔 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22일 직권상정 후 강압적으로 표결처리를 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박근혜 전 대표였다"며 "마치 공주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얄미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전 대표를 따르는 친박연대와 관련해서도 "본회의장에서 사기극을 벌인 이들은 정치가가 아니라 쓰레기"라며 "앞으로 친박연대 박멸 계획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보협 한겨레 지부장은 "한나라당과 정부가 보수언론에게 방송을 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며 "그들마저도 등을 돌리고 나서는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명을 연장하기 위해 날치기 등 온갖 불법과 편법, 폭력을 동원해 언론 관련법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그 법 때문에 이들의 명은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22일에는 참석했지만 23일 대회에는 불참한 한국방송 노조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노종면 YTN 지부장은 "대오의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것을 보며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에 속이 상했다"며 "저 자리를 KBS 노조원들이 채워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는 "언론노조에 벗어나 있는 KBS 노조에게 우리의 심장부를 비워두겠다"며 앞으로 함께 싸워줄 것을 촉구했다.

"재투표 사례가 있다고? 한 명이 거짓말하니 다른 이도 거짓말 하는 형국"

법학자들도 이날 대회에 참석해 전날 벌어진 언론 관련법 통과가 얼마나 졸속적인지를 조목조목 밝혔다. 한국헌법학회장인 김승환 전북대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국회에서 가장 더러운 짓은 이승만 정권 시절 대통령 세번 연임을 위한 벌였던 사사오입 개헌이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는데 이젠 강의안이 바뀌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저질 정치 코미디보다 더한 것이 이번 언론 관련법"이었다며 "이런 일을 벌이는 자들이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니 한숨만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한나라당이 재투표를 한 것을 두고도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며 강도높은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한나라당은 국회법 14조 3항을 들어 재투표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이 조항에 의하면 투표수가 명패수보다 많은 경우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어제는 전자투표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회사무처가 과거 재투표 사례로 제시한 것 중 약사법 등은 투표가 불성립돼 그 회기에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회기로 넘겼다"면서 "이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지킨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 사무처는 자기분열적이 모습을 드러냈다"며 "결국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니 신종 인플루엔자가 번지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거짓말을 하는 형국"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2009년 7월 22일을 "이명박 부하들에 의해서 대한민국 방송이 죽은 날"로 명명했다. 그는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가 뇌사상태로 빠진 날이기도 하다"며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국회가 운영되는 나라는 없다"고 비난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도 언론 관련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다수결의 원칙도, 소수의 기본권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의 법안을 표결해 놓고 의결정족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표결을 하는 경우는 말이 안된다"며 "이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한 첫번째 사례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중요한 문제는 본회의장에는 한나라당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며 "첫번째 표결에서 민주당은 반대의사를 표현하며 본회의장에 있었는데 이들을 포함한다면 의결정족수가 넘친다"며 의결정족수 부족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야4당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는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미디어악법 폐기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허환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