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하 ‘민주화기념공원’>이 오는 6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국가 차원의 민주화기념공원 조성의 근거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다. 1999년 민주화 운동 관련 희생자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422일에 걸친 국회 앞 노숙농성이 있었다.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과 국민의 바람에 국가가 대답한 것이 이 법률이다.
▲ 이주현 이내창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4.19와 5.18의 희생자와 같이 국가적으로 예우하고 기념공원을 조성해 추모키로 한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국민에 대한 폭력을 단절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민주화기념공원의 6월 준공에 앞서 지난 4월 5일 1차 합동 안장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1차 합동안장은 계획에 따라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 장석구 선생을 비롯해 1980년대 대표적 의문사 사건인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1989년 8월 15일 거문도 유림해수욕장에서 변사체로 발견), 1991년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 하에서 사망한 강경대, 김귀정, 천세용 등 20여 명의 민주열사가 이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족은 물론이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이내창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추모단체는 장례를 한 번 더 치른다는 심정으로 이장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유족의 이장 거부로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지난 3월 27일 합동안장식을 위한 실무 논의를 하던 중,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가 합동안장식 행사명과 묘비명에 ‘민주열사’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은 그 목적에 대해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국가로 인해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도록 국가가 나서서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소속된 공무원은 법의 목적에 맞도록 복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민주열사’라는 칭호는 지난 2000년 위원회가 출범한 이후부터 열사들에 대한 예우와 기념, 추모 사업을 위한 각종 회의와 보고서, 공문서 등에 꾸준히 사용해 왔다. 또한 이장을 준비하는 6개월여의 기간 동안 유족과의 협의 과정에서 작성된 ‘합동안장식 계획안’에 아무 문제없이 명기되었다. ‘민주열사’라는 칭호의 폐기를 통보하면서 ‘위원회에서 공식 결정하였다’는 것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는 반세기 이상 독재정권에 맞서 일궈온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다.
위원회는 ‘민주열사’ 대신 ‘민주영령’이라는 칭명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열사 한 분 한 분이 갖고 있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행위에 대한 항거의 내용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고 계승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뒤안길에 두겠다는 것이다. 국가 폭력에 맞서 저항하다 희생당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희석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열사’는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칭이다. 유족에게 ‘민주열사’라는 칭호는 고통의 세월 속에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자 자부심이다. 이를 포기하라는 것은 생업을 버리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왔던 그동안의 삶에 대한 부정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내창 열사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가 인정하기 2년 전에 그의 어머니는 이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유언이다. “왜 죽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죽인 자들을 잡아야 한다.”
“친일파의 후손은 3대가 잘 살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역사에 대한 평가와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되지 않고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견지해야 될 원칙은 있다. 사실에 토대를 두고 민주주의의 상식, 인간의 기본권 존중이 그것이다. 국정원(구 안기부), 기무사를 비롯한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고 간첩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다른 나라의 공문서를 위조하는 것도 독재정권의 악습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주현 이내창기념사업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