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아담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유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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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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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개미들에게 볼 수 있는 종(種)단위의 공격성과 무리단위의 이기적 성향에 대하여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해준 바 있다. 그런데 과연 무리가 아닌 일개미 개체에게도 인간처럼 자아를 의식한 이기심은 없는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일개미 역시 개별적으로도 매우 이기적 존재라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일개미는 알을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여왕개미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희생을 치르는, 말하자면 매우 이타적인 곤충으로 알려져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개미의 이타적 행동을 이기적 행동에서 나타난 전략의 일환이라고 몰아세운다.
개미의 출현은 중생대 백악기 중, 후기로 알려져 있으며 이 기나긴 세월 동안 개미를 지탱해준 사회적 틀은 ‘협업원리’였다. 유구한 세월을 유지해온 이 개미의 사회성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대로 태생적으로 타고난 개별적 개미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날실에 학습으로 익힌 ‘협업원리’라는 씨실로 견고히 엮은 바 크다. 이기적 유전자와 협업원리의 적절한 조합으로 말미암아 개체 간 적자생존의 경쟁도 피할 수 있던 까닭에 일억여 년 동안 생존해올 수 있었다.
인간이 출현한 이후 몇 백만 년 동안 인간사회를 유지해준 틀 역시 개미와 마찬가지로 ‘협업원리’였다. 물론 이 원리는 중세와 근대까지 노예와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 착취에 견뎌온 점이 컸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이후 신분의 차이에 따라 차별화된 노동과 부의 분배는 모순이요, 봉건적 소산이라 사람들은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에 귀족이 소유한 부와 우월적 권한을 제거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만인에게 공정한 룰의 필요성이 요청됐다. 부의 생산과 분배를 신분이나 인간이 아닌 상품과 용역의 흐름에 방점을 두어 인간 경제생활의 궁극적 목표와 목적을 이뤄내려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스미스가 생각했던 이 구상은 매우 파격적이었고 과학적이었다.
그는 《도덕감정론》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이기적 동기가 상호작용하면 초과이익은 얼마 안 가 사라지고 정상이윤만 취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조화가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이익의 추구를 인간경제에 도입하면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세계는 인간이 손해라는 극을 떠나서 각자 이익의 극을 향하도록 하는 일종의 합리적 기구로 전환된다고 그는 어림했다. 거대한 경제체제가 작동하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통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이익과 경쟁이 대열을 적절하게 정렬하기 때문이라고 아담스미스는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아담스미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게 자기이익 추구라는 유사한 칼라의 옷을 입혀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킨 것이다. 낮술을 걸치고 춤추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주색잡기에 능한 사티로스가 다가가 폭탄주를 먹인 꼴이었다. 이성의 신, 아폴론이 대낮부터 흥분해 있는 디오니소스의 마음을 가라앉혀도 시원찮을 판인데 말이다. 자유주의 신봉가였던 에드워드 버크마저도 디오니소스의 농간으로 인한 인간의 지나친 이기심과 탐욕이 자칫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음을 걱정하며 인간의 무한정한 자기이익추구에 대하여 경계한 바 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탐욕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1990년대 사회주의의 맹주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이후 ‘협업’을 강조한 마르크스 경제학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하여 근 100여 년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치열한 싸움은 마침내 시장경제 시스템의 완전한 승리로 귀결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성숙됐다고 평가되는 국가들, 미국이나 EU 경제선진국가들, 그리고 일본의 경제를 들여다보면 사회주의 몰락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야 마땅하나 오히려 경제가 정체되거나 1929년의 세계대공항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에서처럼 마르크스 경제는 유령이 되어 이 세상에 다시 귀환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해 동안 미국 학계에서도, 찰스 다윈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는 달리 이기적이고 비열한 행동이 진화론적으로 보더라도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과학적인 실험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른바 컨버전스(convergence)의 원리, 말하자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경쟁원리’, ‘협업원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로는 다원하고 복잡한 현대의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그렇고 보면 아담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고전이 되긴 하였으나 유령으로 우리 곁을 맴돌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 삶의 제도와 방식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정재흠(꿈퍼나눔마을 촌장·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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