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거짓과 폭력 외면한채 희망 얘기 못해”
ㆍ김종도씨 등 12명 ‘끝나지 않은 전시회’


서울 신용산역 대로변에 있는 남일당 건물은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현장이자 막무가내로 개발을 향해 치닫는 대한민국의 욕망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남았다. 그림책 화가 12명이 모여 희생자들의 시신이 반년 동안 냉동고 안에 보관되어 있고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사태해결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용산참사를 소재로 지난 24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림책 화가, 촛불을 들다’를 기획한 그림책 화가 김종도씨(49)를 27일 남일당 건물 뒤편 카페 ‘레아’에서 만났다. 레아는 용산참사 희생자인 이상림씨가 생전에 운영하던 카페로서 미술계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은 미술전’을 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화가들이 극히 시사적인 문제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조금 의아해 보이기도 한다. 김씨는 “어린이 문학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세상으로서 정의가 이기고 미래를 지향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며 “현실 속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희망과 미래, 아름다움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거짓말 하지 마라, 싸우지 마라, 나쁜 짓 하지 마라’고 가르치는데 정작 무엇이 나쁜 것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지 말라고까지 가르치지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화가들인데 ‘운동권 화가’로 찍혀 부모들이 그들의 작품을 꺼리게 되는 데 대해서, 김씨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서 “물론 그림책에선 그림이 텍스트와 어우러져야 하므로 이처럼 정치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 ‘경축! 개기일식’이라는 작품을 내놨다. 불타는 남일당 건물과 이를 둘러싼 경찰들의 머리 위 하늘에 일식이 일어나는 장면인데, 가려진 태양에서 네개의 손이 나와 태극기의 4괘를 부수고 있다. 김씨는 “용산참사를 일으킨 세력이 나라의 정체성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를 꼬집은 ‘삽돌이가 바위된 야그’(조혜란), 대형 화투 그림에 기둥을 갉아 먹는 쥐를 잡아채는 부엉이를 민화 기법으로 그려넣은 ‘부엉이 날아 오르고’(이억배), 용산참사 발생 장면과 지금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장에 모두 그려넣은 ‘용산참사 기록도’(권윤덕) 등도 눈길을 끈다. 김병하·김환영·조은영·이승현·이광익·홍기한·이상권·장호씨도 각각 작품을 내놨다. 김씨는 “처음엔 일회성으로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참여 작가들이 모임을 지속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앞으로 새로운 전시회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