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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제목
: 최고점 받은 교과서...삽화가 투쟁심 고취해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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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오마이뉴스 |
작성일
: 2010-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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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국어교과서 1순위 추천에도 채택 거부... 교과서심의위 허점 보완해야
10.10.25 09:51 ㅣ최종 업데이트 10.10.25 09:53 이미경 (sjhj815)
교과서심의위원회의 권력 오, 남용
나는 지금 경기도 부천의 고등학교에서 국어, 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국어 교과부장을 겸하고 있다. 2011년에 사용할 교과서를 선정하는 작업이 지난 9월에 있었다. 국어도 더 이상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아 교과서를 선정해야 했다.
9월 10일쯤 교과서 선정 얘기를 들었고 이후 16종(상·하 구성) 교과서 32권을 받았다. 교무실 끝에 놓인 테이블에 주욱 늘어놓았는데 제법 긴 테이블에 가득했다. 우리 학교 국어교사 5명은 시간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교과서를 살펴봤다. 그리고 교과서 선정 평점표에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 후 교과서별로 총점을 내서 1, 2, 3위 교과서를 정해 해당 부서에 넘겼다.
교과서 선정은 매해 하는 작업이 아니라 한 번 결정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년간 같은 교과서를 쓰게 된다. 또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국어교사들이 가장 좋다고 고른 교과서로 가르칠 수 있으려니 했다.
9월 15일, 우리 학교 교과서심의위원회(아래 심의위)가 열렸다. 그런데 1위로 추천한 A출판사의 교과서 삽화가 '투쟁심'을 자극한다며 2, 3위 중에서 고르란다. 교과서 내용도 아니고 삽화가 투쟁심을 고취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차선이나 삼선의 교과서로 바꾸라니.
교과서 삽화가 투쟁심 고취?
심의위는 삽화 대여섯 개를 문제삼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두 사례를 공개한다.
▲ 삽화1 이태준의 <달밤>에 들어간 삽화.
이태준의 달밤
<삽화1>은 이태준의 소설 <달밤>에 들어간 삽화다. 투쟁심을 고취 시키는 장면으로 지목됐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황수건('못난이'로 그려짐)이란 인물이 학교에서 소사로 일할 때, 아내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그대로 믿고 20분 만에 수업종을 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삽화는 황수건의 다급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 읽는 이에게 웃음을 준다.
▲ 삽화2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의 삽화.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삽화2>는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에 들어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나'가 교실 내 폭력을 경험하면서 성숙하게 된다는 성장소설이다. 전쟁 직후 '나'는 노깡(토관) 속에 들어갔다가 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보고 시체인 줄 알고 겁에 질려 오랫동안 그곳을 피해 다닌다. 실체를 잘 모르면서 막연히 키워온 공포감이기에 내적으로 한층 힘들었다.
<삽화2>는 노깡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전 노깡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주인공 '나'의 내면적 갈등이 크고 깊음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주인공이 두려움과 싸우며 노깡에 들어가 니 동물들의 뼈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비로소 상상으로 키워온 두려움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진다. 이런 경험을 한 주인공은 교실에서 '영래' 패거리들의 폭력을 방관하던 데서 벗어나 교생 선생님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해 결국 얻어내고 만다.
위의 삽화는 글의 내용에 부합하는, 주인공의 두려움과 결의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심의위는 글과의 연관성은 보지도 않고 그림이 투쟁심을 고취한다며 반대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심의위의 결정에 9월 17일 재심의를 요청했다. 교과서 심의를 맡은 부서의 계획서에 대해 교과부장이 설명할 수 있다는 항목에 의거해서다. 재심의가 이루어진 것은 27일. 교과부장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심의위원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각 교과서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10여 과목의 교과서를 30분 정도 살펴보겠다는 것(각 과목당 3분 정도 시간을 안배한 것이다). 30분 후 다시 심의위가 열리는 곳으로 갔고 그렇게 해서 겨우 국어 교과서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삽화가 투쟁심을 고취한다는 이태준의 <달밤>과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 우리 학교 학생들의 수준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해당 교과서의 편집 상태, 학습 내용의 전개 방법들이 국어 교사들이 판단하기에 만족스러워 선정했다면서 교사로서 마음에 드는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도 전달했다.
독서력 떨어지는 학생들, 삽화만 보고 투쟁심 '활활'?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부랴부랴 교실로 가 수업을 했다. 수업 도중 다시 호출이 와 회의장에 가니 심의위원들이 질문이 있다고 했다. 교과서심의위원회는 교과서 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로 구성된다. 지역위원, 학교장, 학부모위원이 각각 3~5가지 정도 질문을 했다. 그들이 심의위원으로서 최종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지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여겨 그 내용을 아래에 옮긴다.
[지역위원의 질문 중에서]
- 해당 출판사의 교과서가 부천 관내에서 몇 학교가 선정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아는가? 문제점을 혹시 들어 알고 있는가?
: 2011년 사용될 교과서이기 때문에 사용된 사례가 없는데도 그런 질문을 했다.
-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우리 학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 내가 <달밤>이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알려준 후 나온 질문이다. 그럼 왜 고전을 배워야 하는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력이란 날개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것 아닌가?
- 교과서를 학생들이 함부로 다룬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럼 이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완벽한 만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평가(시험)가 있는 한 온전히 교과서를 의미있는 좋은 책으로 사랑하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평가를 빼놓을 수 있나? 요즘은 더욱 평가에 불을 붙이고 있지 않은가?
[학교장의 질문 중에서]
- 왜 굳이 싫다는 교과서를 고집하는가? 다른 교과서들도 다 검정을 통과한 것들이다.
: 그럼 국어교사들이 무엇 때문에 교과서 선정 작업에 참여하는가? 그냥 심의위원들이 둘러앉아서 '어-느-것-을-고-를-까-요?'하고 골라내든지 무작위로 하나 집어낼 일이지.
- 선생님도 분명 이 교과서 삽화가 비호감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
: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혹시 심의위원님들에게 비호감의 삽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원작에 충실한 삽화이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니 오히려 놀라워하며 환호했다"는 얘기는 했다.
- 아까 선생님이 우리 학생들 독서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그럼 학생들이 내용은 안 읽고 삽화만 보고 내용 판단을 할 것 같닌가? 충분히 투쟁심을 고취할 수 있지 않은가?
: 이는 교사의 수업과정을 아예 '0'으로 보는 발언이다. 교육 경력 30년이 넘는 분이 교육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리고 투쟁심을 고취 시키는 일은 학습자에게 감동까지 불러일으켜야 가능한 일이다. 교육자로서 교육과정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국어 교과서가 너무 문학 중심이다. 국어 교과서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 국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지식, 문학 6영역으로 나눈다. 각 영역의 내용이 골고루 담겨야 한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와 같은 언어생활을 가르치는 데 아주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검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문학에 치우친 국어책을 괜찮은 책이라고 인정했다는 말인가?
[학부모위원의 질문 중에서]
- 저는 교사의 전문성을 해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어 교과서가 다양한 언어생활을 담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설명문이나 논설문 이런 것도 실려야지.
: 당연하다. 국어책은 다양한 교육자료들이 실려 있어야 한다. 국어 영역을 골고루 담아내야 한다. 해당 교과서는 다양한 실용문들, 설명문, 논설문뿐만 아니라 기사문, 토론 관련 글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었고, 일일이 책을 열어서 단원의 제목들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논의는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그래도 국어책은 국어책다워야지. 문학 중심이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심의위원들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교육청에 문의도 해봤지만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심의위원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교권 침해하는 교과서심의위, 왜 이러나
학교의 교과서 선정은 아래의 절차를 거친다. 해당 교과의 교사들이 3배수의 교과서를 뽑아 교과서심의위원회에 올리면 심의위가 최종으로 책 한 권을 뽑는다.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3배수의 책을 뽑는 것까지다. 그리고 심의위원들이 무슨 기준을 적용하든지 간에 3배수의 교과서 중에서 한 권을 뽑는 최종결정권은 그들에게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교과서심의위원회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로 구성된다. 학교운영위원들이 모든 교과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지닐 리 없으니 당연히 심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제도를 만든 것은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교사들이 전권을 가졌을 때 혹여 출판사와 결탁해 부정 선정을 할 수 있기에 감시와 견제를 위한 절차인 것이다.
이러한 교과서심의제도가 항상 문제를 낳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이 선정한 교과서를 심의위가 존중하거나 역으로 심의위가 선택한 교과서에 교사들도 만족할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후보 교과서가 비슷비슷해서 차별성이 없을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다르다. 국어교사들이 다른 2종의 교과서와 비교해 탁월하다고 여겨 1위 점수를 주었는데 심의위와 그 의견이 다른 것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투쟁심 고취 때문이라니 납득하기 어렵다. 참고로 우리 학교 국어교사는 함께 모여서 교과서를 평가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서 공강 시간에 제각각 검토했을 뿐이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3배수의 교과서를 뽑아 제출하는 방식은 고쳐야 한다. 심의위가 최종결정권을 갖는 것도 보완이 필요하다. 교사의 전문성이 무시된 채 최종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전문성을 지켜주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심의위원들도 순위에 오른 교과서들을 살펴보고 항목별 점수를 매겨 그 판단이 합리적이었는지 공개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편집이나 실린 내용에 대한 호감도, 내용의 다양성, 색감이나 삽화의 친밀도와 같은 점수 평점표를 만들어 심의 과정을 객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객관화된 점수표를 갖는다면 교사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기도 수월할 것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출처 : 최고점 받은 교과서...삽화가 투쟁심 고취해 안 돼?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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